런웨이 계산과 착시 — 12개월이 8개월이 되는 이유
현금을 월 소진액으로 나눈 숫자를 믿고 있다면, 실제로 남은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.
런웨이는 스타트업에서 가장 자주 계산되면서 가장 자주 틀리는 숫자입니다. 계산식 자체는 초등학교 나눗셈인데, 세 가지 가정이 조용히 깔려 있고 그 가정이 거의 항상 틀립니다.
보유 현금 12억, 첫 달 순소진 1억. 소진이 매달 10%씩 늘어나는 경우와 그대로인 경우
소진 그대로소진 월 10% 증가
누적 소진 = Σ(1억 × 1.1ⁿ). 단순 나눗셈으로는 12개월이지만 실제로는 8.3개월에 끝납니다. 두 선은 초반 넉 달 동안 거의 붙어 있다가 후반부에 급격히 벌어집니다 — 위험을 늦게 알아차리는 이유입니다. 월 10%는 설명을 위한 가정값입니다.
기본 계산
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게 순소진(net burn)입니다. 총소진과 자주 혼동됩니다.
| 구분 | 정의 | 용도 |
|---|---|---|
| 총소진 gross burn | 월 총 지출 | 비용 구조 파악 |
| 순소진 net burn | 월 총 지출 − 월 매출 | 런웨이 계산 |
런웨이는 반드시 순소진으로 계산합니다. 다만 매출이 불안정하다면 좋았던 달을 기준으로 잡지 말고 보수적인 값을 써야 합니다. 여기서부터 착시가 시작됩니다.
착시 1 — 소진액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
기본 계산은 “앞으로도 매달 똑같이 쓴다”를 가정합니다. 성장하는 회사에서 이 가정은 거의 성립하지 않습니다. 사람을 뽑고, 마케팅을 늘리고, 인프라 비용이 따라 올라갑니다.
월 소진이 10%씩 증가하는 경우를 같은 조건으로 계산해보겠습니다.
| 개월 | 해당 월 소진 | 누적 소진 | 잔액 |
|---|---|---|---|
| 1 | 5,000 | 5,000 | 55,000 |
| 3 | 6,050 | 16,550 | 43,450 |
| 5 | 7,321 | 30,526 | 29,474 |
| 7 | 8,858 | 47,436 | 12,564 |
| 8 | 9,744 | 57,180 | 2,820 |
| 9 | 10,718 | — | 소진 |
단위: 만원
12개월이라고 믿었던 런웨이가 실제로는 약 8.3개월입니다. 3.7개월이 사라졌습니다. 더 위험한 건, 이 격차가 후반부에 급격히 벌어진다는 점입니다. 6개월째까지는 계획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다가 갑자기 몰려옵니다.
월 5%만 늘어도
증가율이 완만해도 결과는 달라집니다. 월 5% 증가라면 12개월 런웨이가 약 10개월이 됩니다. “조금씩 늘어나는 정도”라고 넘기기 어려운 크기입니다.
착시 2 — 투자 유치에는 시간이 걸립니다
런웨이가 8개월 남았다는 건 8개월 동안 일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. 그 안에 다음 자금을 확보해야 합니다.
투자 유치는 첫 미팅부터 실제 입금까지 통상 3~6개월이 걸립니다. 시장이 나쁘면 더 걸립니다. 이걸 빼면 실제로 남는 시간은 이렇습니다.
12개월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실질적으로는 3개월입니다. 그리고 이 3개월 안에 다음 라운드에서 보여줄 성과를 만들어야 합니다.
업계에서 통용되는 기준
- 라운드를 마칠 때 목표 런웨이: 18~24개월
- 다음 라운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: 런웨이 9~12개월 남았을 때
- 런웨이 6개월 미만: 협상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간. 투자자도 이 사실을 압니다.
착시 3 — 소진을 줄여도 즉시 반영되지 않습니다
“위험하면 그때 줄이면 되지”라고 생각하기 쉽지만, 비용은 브레이크를 밟는 즉시 멈추지 않습니다.
- 인건비 — 조정에는 통보 기간과 절차가 필요하고, 그 사이에도 비용은 나갑니다.
- 계약 — 사무실 임대, 연간 소프트웨어 계약은 즉시 해지되지 않습니다.
- 마케팅 — 중단하면 매출도 함께 줄어, 순소진이 기대만큼 안 내려갑니다.
그래서 비용 조정은 필요해지기 2~3개월 전에 시작해야 효과가 납니다. 늦게 시작하면 조정 자체가 현금을 더 태웁니다.
런웨이보다 중요한 질문
런웨이는 “언제 죽는가”를 말해주지만, 정작 중요한 건 “이대로 가면 살아남는가”입니다. 이걸 구분하는 표현이 디폴트 얼라이브(default alive)입니다.
디폴트 얼라이브 vs 디폴트 데드
추가 투자 없이, 현재의 성장 속도와 비용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을 때 현금이 떨어지기 전에 흑자에 도달하는가. 도달한다면 디폴트 얼라이브, 못 한다면 디폴트 데드입니다.
많은 창업자가 자기 회사가 어느 쪽인지 모르는 상태로 운영합니다. 그런데 이 답에 따라 투자 유치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. 디폴트 얼라이브라면 투자는 가속을 위한 선택이고, 디폴트 데드라면 생존을 위한 필수입니다. 협상 위치가 다릅니다.
효율을 보는 지표: 번 멀티플
같은 5,000만원을 태워도 어떤 회사는 매출을 크게 늘리고 어떤 회사는 제자리입니다. 이 차이를 보는 지표가 번 멀티플(burn multiple)입니다.
| 번 멀티플 | 해석 |
|---|---|
| 1배 미만 | 매우 효율적 |
| 1~1.5배 | 양호 |
| 1.5~2배 | 보통 |
| 2~3배 | 점검 필요 |
| 3배 초과 | 구조적 문제 가능성 |
런웨이가 시간을 보여준다면 번 멀티플은 그 시간을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. 런웨이가 짧아도 번 멀티플이 좋으면 투자 유치가 어렵지 않고, 런웨이가 길어도 번 멀티플이 나쁘면 다음 라운드가 막힙니다.
실무 체크리스트
- 순소진으로 계산했는가. 총소진으로 계산하면 런웨이가 과소 추정되고, 매출을 낙관하면 과대 추정됩니다.
- 소진 증가율을 반영했는가. 최근 3개월 추세를 그대로 연장해보세요.
- 투자 유치 기간을 뺐는가. 최소 4개월, 보수적으로는 6개월입니다.
- 비용 조정 리드타임을 고려했는가. 결정에서 실제 반영까지 2~3개월입니다.
- 디폴트 얼라이브인지 아는가. 모른다면 이번 주에 계산하세요.
- 매출 가정이 보수적인가. 최고치가 아니라 최근 3개월 평균을 쓰세요.
가장 흔한 실패 패턴
런웨이를 희망 시나리오로 계산하고, 그 숫자를 믿고 채용을 늘리고, 6개월 뒤에 실제 잔액을 보고 놀라는 순서입니다. 이 시점에는 이미 협상력이 없어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거나 급하게 줄여야 합니다. 런웨이는 보수적으로 계산해서 자주 갱신하는 숫자여야 합니다. 월 1회면 충분합니다.
정리
- 런웨이는 순소진으로 계산합니다. 총소진과 혼동하지 마세요.
- 소진이 월 10% 증가하면 12개월 런웨이는 8.3개월이 됩니다.
- 투자 유치에 3~6개월이 걸립니다. 실질 가용 기간은 그만큼 짧습니다.
- 비용 조정은 2~3개월 전에 시작해야 반영됩니다.
- 런웨이보다 중요한 건 디폴트 얼라이브인지 여부입니다.
- 번 멀티플은 태운 돈이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.
참고
링크가 붙은 항목은 원문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. 링크가 없는 항목은 안정적인 공개 주소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며, 서지 정보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.
- 계산식과 소진 증가율 반영 방식은 계산 방법론 5항에 있습니다.
- Paul Graham. “Default Alive or Default Dead?” (2015)
- David Sacks. “The Burn Multiple” (2020) — 번 멀티플 = 순소진 ÷ 순증 ARR
- 국내 벤처투자 환경 —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투자 동향 · 한국벤처투자
- 확인하지 못한 것 — “조달 소요 3~6개월”, “목표 런웨이 18~24개월”, 시뮬레이션의 “월 10% 증가”는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경험칙이자 설명용 가정이며, 특정 통계에서 나온 값이 아닙니다.